from 1 to 10 (97/10/15)
---#1---
컴퓨터를 뒤에 놓아 두고,
의자를 반바퀴 돌려 놓으면.. 유리창이 보인다. 커다란 유리창
지는 햇살이 이젠 강하지 않음을 알게 된다.
유리창의 오른쪽 윗 귀퉁이만 환하고..
나머지는 쓸쓸한 어둑어둑한 차가움이 전달된다.
---#2---
집에 전화를 걸었다.
'응. 낸데, 표를 내일 꺼 끊었어.'
'한 아홉시 쯤 집에 갈거야.'
'표? 다섯시 차야.'
'다섯 시 십 이분.'
'응 사먹지 뭐... '
'응.'
다섯시 십 이분발 대구행 차가 잇는지는 모른다.
그저 표 끊으러 가기 싫었을 뿐이었다.
준비물도 아직 덜 챙겼고....
문득 가방을 본다. 꼭꼭 싸 놓은 짐들..
거기에 카세트 큰 것과 트랜스가 추가될지도 모른다.
아니.. 가져갈 일 없을지도 모르고..
---#3---
문득 음악이 듣고 싶었다.
트랜스를 꽂고 카세트 전원을 연결한다.
다시 짐을 풀고, 카세트를 찾아 본다.
이제까지 듣지 않았던 걸로 골라 보고 싶다..
---#4---
그가 죽었다는 말은 대구에서 들었다.
버스를 타고 나서, 버스가 출발하지도 않았을 때,
그는 죽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 말을 들어도 놀라는 사람은 없었다.
나 자신도, 메모란에 적겠다는 마음조차 없었다.
---#5---
'그사람을 좋아하는 거야?'
'응. 무척무척 좋아해. 이전에 콘서트 있었거든.
정말 거기 가고 싶었는데 3학년이라서 시간이 도통 나질 않았어.'
'아.. 그 그린 콘서트라는거?'
'응.. 얼마나 안타까웠다구.'
---#6---
더운 여름날이었다.
소위 방학이 끝나는 날. 어느 애와 미팅을 했다.
'샬라라 공주' 애는 그렇게 불렸다.
팥빙설 하나 사주었다. 맛없는 팥빙설.. 왜 이런걸 시킬까..
더운 날, 오싹오싹하게 썰렁함에 떨면서 자리를 나왔다.
그 애는 엘튼 존의 스카이라인 피젼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나는 엉뚱하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
'어떤 노래가 좋아?'
'다 좋아해.'
서로 카세트 테이프 하나씩 사서 선물해 주고 바이바이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나는 정작 사고 싶었던 앨범을 선물했고,
별로 원하지도 않았던 테이프를 받았다.
---#7---
11시 가량..
잠실에 내려서 마을 버스를 기다렸다. 그러나 오지 않았다.
택시가 한두대 서더니 줄을 지어 있다.
앞쪽에 있던 두 취객들, 한 택시가 태우지 않자 뒤로 간다.
나의 자리가 비었다. 앞의 택시에 탄다.
'성원 아파트요.'
문득, 그 사람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기타 소리와 함께.
---#8---
'와.. 이 노래 좋다. 다른 거 어떤 거 있어?'
'... 근데 잘 모르겠다. 듣기 좋아?'
'그럼 복사 좀 해줘.'
'푸헤헤.. 그래 테이프 줄께.. 크하하핫.'
---#9---
그 애는 테이프를 사서 직접 복사를 하고
새로이 속지를 갈아서 거기에 곡명까지 써 주었다.
'어.. 고마워..'
복사할려고 미리 가방속에 넣고 온 60분짜리 SK테이프는
뜯겨지지 않고 영원히 남아있게 되었다.
---#10---
'미국의 컨트리 송 가수 존 덴버가 사망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전세 비행기를 타고 가는 도중 비행기 추락 사고를 당했습니
다. 그의 부인은 그가 집을 떠난 이후 소식이 없다고 말합니다.'
'~~~미국 해안 경비대는 존 덴버 소유의 비행기가 바다에 추락
했으며, 사체는 심하게 손상되어 신원을 알 수 없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