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터와 놀이터

욕이 필요한 경우. (2002/12/11)

상데쥬 2004. 12. 18. 04:27

김구라 황봉알의 시사대담이란 프로그램이 있는데, 이것은 딴지일보를 모르는 사람, 행여 알아도 그 안의 웹토이방송은 모르는 사람, 마지막으로 자료공유하는 포트가 막힌 사람들은 잘 알지도 못하고 찾기도 쉽지 않다. - 뭐 나를 두고 하는 말이다.

지난 주에 뒷방사는 호준이녀석이 '아참, 형, 보실래요? 엄청나게 좋은건데.' 하면서 1편부터 최근것까지 담아놓은 시디를 선물로 주었는데, 그놈이 내 공부를 망칠려고 작정을 했지, 공부하면서 음악듣는 것은 공부에는 말 괜찮고 능률좋은 일인데, 공부하면서 방송듣는 것은 정말 공부를 황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이런 것으로 보아서는 익창군은 한가지 일 외에는 집중이 안되는 모양이다.

재미야 물론 있었다.

김구라는 누구인지는 잘 모르지만, 황봉알은 알고 있었다. 지난 2000년도 즈음해서 '황봉알의 욕기행'이란 영상클립이 나돌았었는데, 이것이 엽기토끼 정도는 아니지만 상당한 히트를 쳤었던 것이다. 물론 소재 빈곤으로 칠편 정도까지밖에 못 버텼지만, 적어도 5편까지는 쓸만했었다. 어쨌든 그런 예명으로 나왔으니 시사대담도 보통의 시사대담은 아닐 터.

얘들의 시사대담에는 욕이 들어간다. 뭐 우리들이 청소년이었을 때라던가 요즘 애들이 쓰는 욕보다는 무지하게 쓰는 단어는 단조롭긴 하지만, 그래도 욕을 쓰는 것은 다른 곳에서는 찾기 힘든 것이다. 요즘 세상은 간혹 티브이에 잡힌 농구선수의 입모양 가지고도 이리저리 토론을 할 정도다.

그러므로 얘들 프로그램은 사회비리 고발이라던가 연예사건 내막 등등, 사회의 메인 스트림에서 해주기 힘든 정화를 위한 유황 정도의 역할을 해주는 것이고, 그런 역할은 어떻게든지,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욕은 필요한데,

그 예를 들자면, 2002년도 초기의 사건을 말해야 하겠다.

월드컵 덕분에 2002년의 5월 이전의 일들은 대개 싹 다 잊어먹는 경우가 많은데, 그 중의 하나를 들자면 안톤 오노 사건이 있었다. 부정 심판 관련해서 말들이 많았고, 반 오노, 반미기류가 있어서 어지간하면 KFC나 버거킹, 맥도날드, 피자헛 등등을 가지 말자는 분위기였었는데, 여기에 봇물을 더해준 것이 유승준 사건이었고, 결과로 나타났다고 할 만한 것이 흔들바위 사건이었다.

-속보! 흔들바위 미국인 관광객들에 의해 추락!-

이라는 것이었는데, 사실 내용이 상당히 그럴듯했었다. 사람수는 대여섯명이긴 했지만 얘네들이 '역도코치' 출신 등등, 힘은 있을 것이고, 또한 만화 등을 통해 대개 미국 애들은 보통 사람들의 네배 사이즈로 각인이 되는 것이었으니, 또한 흔들바위에 한번 가본 사람이라면, 물론 설명은 허구한 날 듣긴 했지만, 그래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것이었지 않은가.

흔들바위는 설악산으로 수학여행을 간다면 반드시 보는 것이다. 대청봉이나 죽음의 계곡은 어른이 되어서 대학의 동아리 훈련에서야 가는 것이니, 중학교, 고등학교 때에는 끽해야 폭포, 비선대, 흔들바위 이런 곳을 가이드의 얼얼한 메가폰 소리를 들으며 찾아가는 것이다.

요즘은 어떤 순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경우는 국민학생일 때 (요즘이야 초등학교이지만 나의 때는 국민학교였다.) 울산 공업단지(-_-), 중학교 때는 한려수도, 고등학교 때에는 설악산을 갔었는데, 요즘도 물론 그렇지만 그당시에도 고등학생은 현실에 눈떴다기 보다는 어느 정도 환상의 세계에 발을 담그고 있던 것이었다.

그간 수많이 보아왔던 사진(교과서에 꼭 한컷 들어있는 것)과 여러 백과사전, 그리고 한때 나왔던 티브이 프로그램(흔들바위의 신비를 운운한..)에서 나왔던 흔들바위는, '매우컸다.'

물론 흔들바위의 신비는 '이렇게 큰데도 움직인다.' 에 있으니 그 전제가 되는 '크기' 가 중요한 것이었고, 그 이유인지는 몰라도 사진속의 흔들바위는 사람 수십명 엮어놓은것보다 더 커 보였고, 티브이속의 흔들바위는 주먹만한 얼굴의 리포터는 눈에도 안 찰 정도로 집채만했던 것이었다. '와 무지 크구나.'

그렇게 되어 설악산에 도착해서, 이틀이나 사흘째, 흔들바위를 찾게 된다. 첫날밤이야 놀다가 밤새는 것이고, 이틀밤 역시 이야기로 밤을 새니 사흘째면 기껏해야 농구만 하는 애들로서는 지치기 시작하게 된다.

그리 쉽지는 않은 흔들바위 가는 길(길이라기보다는 평이한 경사 정도라 기억되는데)에 가까이로는 산새소리만 들리고, 애들은 헉헉 걸어가며, 앞은 보이지 않는데 끝없이 이어지고, 으아 힘들다 싶으면 드디어 밝은 곳이 보이고, 메가폰 소리가 들리게 되며, 조금 더 나아가면 앞이 확 트이면서 흔들바위가 보이게 된다. 그리고, 차를 탔던 때에 멀리서 은은하게 보이던 울산바위의 위용을 생각하며, 그 '커다란' 흔들바위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실물을 보게 되는 것이다. 실물...모루처럼 생긴 기반암 위의 손오공이 튀어나왔음직한 정말 짜그만 돌덩이 하나를...

그때의 애들 생각은 한 학생의 말로 요약될수 있다.

'와, 씨발, 니기미 좆도 좆만해가꼬.'

그렇다. 이때 욕이 필요한 것이다.


.. 고등학교 의 그때 이후로는 흔들바위쪽은 찾아보지 않았는데, 내년 내로 한번 가보고 싶어진다. 왠지, 이번에는 흔들바위가 정말 크게 느껴지고 보일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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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설악산 아직 안 찾아갔음.

2.호준군은 MBC 입사했음. 덕불고 필입사... 라고 적어 주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