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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있는 게시판 #2


욱군. | 이유있는 게시판 2004/07/18 00:20

욱군의 집으로.

삼성맨인 욱군은 수원에 가정을 차렸다.

그를 보러 친구들은 교통 수단을 다 동원하여 강남에서 모임,

30분 넘게 줄 서서 기다리고는

결국은 아무 버스나 타고 줄창 사십분을 간다.

월드컵 경기장 앞에 내려서는 전화해서 데리러 나오라고 말한다.

- 사당에서 나왔으면 더 좋았을 것을 -

단아한 집은 예전 권군 페이지에서 사진으로는 봤지만,

실제로 보니 정말 예상 이상이었다.

먼지가 하나도 없었다.

양말 자국마저 남을 것만 같은 무서울이만치 깨끗함이 있었다.

한가닥 해 보일 것 같은 공기청정기가 떡하니 있다.

(옆면에는 '등외품'이란 마크가 붙어 있다.)

다른 녀석들은 두 번 더 되지만, 나로서는 처음 가는 것이라 뭐 가져가야 하지 않을까 하다가

들고 가는 것 무겁고 다음 번에 진중하게 가자 싶어서 집 근처 슈퍼에서 오렌지 쥬스로 결정.

티브이에서는 올스타전이 나오고,

컴퓨터로는 한때 욱군의 별명이었던 캐릭이 출연하는 '시간탐험대'를 받아 주며,

고기를 구워 먹으며 한동안 시간을 즐긴다.

그리고 잠시 쉬면서 앨범을 본다.

그 유명한 '망사' 드레스 입은 욱군 사진을 본다.

- 아 욱군이 아니라 욱 아저씨로군 -

한켠에는 이미 베이비 용품이 차곡 차곡 쌓여 가는 중.

설마 며칠 후에 전화 걸어서 누크 프리미엄 사달라는 것은 아니겠지.
혹시 모르니까 두디기 두 장 겹쳐서 재단해서 미싱으로 두두두 박아서는

그거 대신 '우주복' 줄 거라고 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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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뉴스

리츠 칼튼의 커피값은 두 잔에 칠만원 가량 나온다.

약학 6년제 관련 분쟁은 아직 완결되지 않았다.

수원 서울간 일반 차비는 1500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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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 이유있는 게시판 2004/07/16 23:07


옷이 하나 있었다.

빨강색 가까운 고양이 무늬가 가득 있는 옷이었다.

고양이는 두 귀를 쫑긋 세우고, 목도 한껏 펴서는 우아하게 네 발로 앉아 있고,

꼬리는 뒤로 늘어뜨려 끝은 다시 구부리듯 올라와 있었다.

어쩌면 족제비인지도 모를, 꽤나 멋을 부린 무늬였다.

로고인지도 모른다.

언젠가, 어디선가 봤다는 느낌이 들었으니까.

관심은 오래 끌면 손해인 시대로 접어들었으므로,

과거 시스템, 타임 등을 직접 골라 본 경험이 있는 육선생님께,

한 때 보세옷은 다 섭렵한 경험이 있는 욱선생님께 메시지를 보냈다.

다들 모른다 하였다.

저 멀리 계시는 삐삐선생님께도 메시지를 보냈는데,

울시가 아닐까 하는 대답이었다.

아하 그렇구나. 고맙다. 했는데.

지금 보니 울시는 달리는 여우.. 로군. 우아함이 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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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끼우동 | 이유있는 게시판 2004/07/12 20:31

서울엔 없고 대구에 있는 '것' - 좀더 힌트를 준다 치면 '일반 중화 요리' - 라면

단연 야끼우동일 터.

대구의 중화요리점이 돌리는 스티커 등등등에는 글자색도 빨갛게, 크기도 크게

당당히 메뉴로 올라와 있거니와, 일부 중국집은 '야끼우동 전문'이라고도 써 놓는데,

심지어는 '장우동' 같은 곳에서도 '쫄야끼덮밥' 같은 메뉴가 있다.

서울의 중화요리점 - 고대, 연대, 녹두, 삼성, 반포, 천호동, 용산, 창동, 의정부, 구로, 당산, 남산...

다 돌아다녀도 야끼우동은 보이지 않았다.

지금은 알 수 없지. 그래도.. 없을 듯.

대학교 입학 전 오리엔테이션 할 무렵, 중국집 찾아가서 '야끼우동요' 했더니

'그게 뭐에요?' 라고 대답이 왔던 기억이 있다.

본 적도 없고, 들은 적도 없으며, 맛본 적은 더더욱 없는 이들이 그게뭐야 물으면

간단하게 설명해줄 수는 있다.

'쫄짬뽕'

대구백화점 아랫길로 주욱 내려가면 야끼우동과 사천짜장은 특히 잘 하는 중국집이 있었는데,

공익 시절때 많이 이용하다가 어느 날 가 보니 허허 벌판에 공사장으로 변해 있어 당황했었는데,

금년에 문득 시내로 내려가니 커다랗게 신식으로 재개장을 해 놓고 있었다.

메뉴는 1000원씩 올랐다.

야끼우동은 식사부 맨 첫머리에 놓여 있었다.

앞쪽에 한자가 적혀 있어서 - 야끼란 말 자체가 중국말은 아닐 터이니 짐작은 했다. -

손수 적었는데,

자전 찾기 귀찮아서 아직 이름을 모르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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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번호 변화 | 이유있는 게시판 2004/07/06 21:25


누나집이 역시 서울대학교 근처이다 보니

알아 두어야 할 차 번호는 세 가지로 압축된다.

289-1 : 이것은 5412번으로

142 : 이것은 750번이던가...

그리고 38번.

289-1번은 강남-반포를 거쳐 서울대 정문을 통과해서 고시촌쪽으로 가는 차인데,

반포에 친구집 있는 것은 놓고 본다 치더라도

일단 고시촌쪽으로 가는 것이니, 비라도 오고 걷기도 귀찮으면 반드시 타야 하는 것이다.

289-1번 시절에는 종점 근처라서 배차 간격은 좁은데 타는 사람은 별로 없어 한산하던것이

네자리 숫자가 되고 나니 오는 차마다 가득 가득 엔진이 힘들어하는 소리를 낸다.

다른 차들이 모두 서울대 앞에서 손바닥 찍고 돌아가는 것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리라.

이제 녹두거리 앞에는 버스가 많이 줄었다.

그 중의 하나가 142번.

142번은 142-1번과 쌍쌍이었는데,

한강다리-노량진-신림사거리-녹두-서울대앞-서울대역-숭실대-상도터널-한강다리 의 둥근 길을

한쪽은 시계방향, 다른 한쪽은 반시계방향으로 돌았다.

서울대와 고대 사이를 움직이는 지상라인의 한 축이었다. 142 & 38...

이제 142번은 녹두-노량진 쪽으로는 가지 않게 되었다.

가는 길이 빨라지긴 했는데, 익창군은 낙성대 쪽이니 오히려 좋지 않게 되었다.

학원에서 바로 갈 수가 없는 것이니..

142번에 좌절하다 보니 38번은 검색도 안했다.

38번은 이촌 - 용산 - 시청 - 종각 - 동대문 - 신설동 - (고대) - 청량리 - 휘경 - 외대 - 석계

.. 로 이어졌었는데,

당시 이촌 누나집에서 한 때 있었고,

용산은 컴퓨터 부품 사러 가는 곳이었고 (대신 좀 걸어야 한다. 밤에 걸으면 신기한 경험을 한다.),

종각 부근은 책 보러,

3가-동대문은 영화 보러, 만화책 사러,

고대야 수업 들으러,

외대는 육선생님 만나러 가는 일이 있었으니, 나로서는 그야말로 황금노선이었다.

다만 고대 쪽으로는 라인이 갈라지기 때문에 정말 안 왔다. 803번과 38번때문에 치를 떤 적이 많다.

상왕십리에 자취방 있을 때에는 38-2번으로 육선생님을 만나러 갔었고,

육선생님이 불모의 자취방을 떠나 젖과 꿀이 흐르는 왕십리장에 찾아올 때,

38-2번의 불빛을 따라 좇아갔으니 그 시절도 오래 전의 일이다.

142 & 38 라인을 타면 서울대에서 고대까지 1시간 10분 남짓 걸린다.

(그냥 괜찮게 간다.. 교통 수준으로는 말이다.)

갈아탈 수 있는 구간은 이촌 - 용산 - 삼각지 - 숙명여대 - 서울역인데,

자리 골라 앉으려면 38번쪽은 이촌에서, 142번쪽은 서울역에서 타는 것이 제일 나았다.

비가 올 때는... 38번쪽은 잘 모르겠지만 142번쪽은 삼각지에 유개 정류장이 있으니 거기서 타면 되었다.

노트북 얻고 얼마 안 될 때,

'서프라이즈' DVD 빌려서 38 & 142 버스 뒷자리 앉아 고대에서부터 서울역, 다시 녹두거리까지 오는 동안 거의 2/3은 봤던 기억이 남는다.

지하철은 별로 안 탄다. 이건 대구 지하철 사건 이전부터 그랬다.

오래 전, 신림동에 학원 한달치 끊었던 적이 있었는데, 당시 집은 소위 왕십리장이었다.

10분 걸어서 지하철 타서 2호선 빙 ~ 돌아 서울대앞 내려서 마을버스 타면 거의 한시간.

지하철만 46분이던가 그랬다.

2호선-동대문운동장에서 4호선-사당에서 2호선.. 이것도 삼십하고 몇분이던가... 꽤 나오고

갈아타는 것 ... 창동에서 갈아타는 정도라면 멀어도 지상이라 쓸만한데 .. 지하.. 영.. 도리도리.

그 당시에 이미 학을 뗐다.

그래도 지상철은 괜찮아하며 탄다. 자리만 차지할 수 있으면 괜찮은 시간 여행이 된다.

금년엔 지상철을 타 보지 않았으니, 용산 가서 일부러라도 한 번 타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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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와 함께 음악 하나. | 이유있는 게시판 2004/07/04 02:51

일곱번 세면서 들어 보는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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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글 107개 | 이유있는 게시판 2004/07/02 17:02


글은 107개

백업은 0번.

예전, 글 올리는 게시판들은

문득, 생각이 날 때마다 갈무리하거나, 다운을 받아 저장하곤 했다.

문득의 빈도는 --- 보통은 이 주일에 한 번, 늦어도 한 달에 한 번

지금은,

솔직이, 글이 없어지건 말건 상관할 바가 아니다... 란 것일까.

별로, 느껴지는 것이 없다.

이런 것을 보통 '내비둔다.' 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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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전반기 끝남 | 이유있는 게시판 2004/06/27 12:00


그와 동시에 생활방식도 달라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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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되는 욱군. | 이유있는 게시판 2004/06/23 19:32

육선생님에게 메시지를 보낸 적이 있다.

나이가 들면 예를 차리기 때문일까,

단촐한 말 몇 마디로, 메시지로는 단 한번으로 끝나는 경우는 점점 없어진다.

그날도 이리저리 저리이리 언제오냐 도대체 대구에 엿붙여놨냐 등등

이런 저런 글을 보내다가 결국은 전화로 전환.

몸은 괜찮니. 시험은 언제니. 등등

그리고 서울 친구들 이야기로 넘어갔다.

'욱이가 저번에 토요일날 시간 있냐.. 라면서 대구 올 듯한 말을 하던데..'


- 응 그러고보니 제수씨가 9월달에 몸을 푸~~

잠깐 갸우뚱.

'잠깐. 친구여. 욱이가 결혼을 언제 했지?'

- 금년 2월달에 했지. -

또 잠깐 갸우뚱.

나이가 들면 셈하는 데 손가락이 필요하게 된다.

오른손으로 전화기를 잡고 귀에 대고 통화하면서,

왼손으로 셈을 하고는,

뒷머리를 잠깐 긁어 주었다.

그것은 나에게 붙어 있는 내가 모를, 혹은 알면서도 일부러 버릇삼아 하는 행동일지도 모른다.

9월이라. 흠.

.흠.

.흠.

예전에 본 사진의 글을 빌려서,

아무튼 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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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에 무엇을 했던가. | 이유있는 게시판 2004/06/18 20:27

어제는 비가 왔다.

빗소리를 들으면서 책장에 이리저리 꽂힌 종이를 손가락으로 튕기던 저녁 한 순간.

한 뭉터기 떨려져 나온, 먼지는 위쪽에 상당히 묻은 프린트물을 보았다.

(디지탈 사진기가 아쉬운 한 순간.)

'신학 교리' 라던가 '교리 문답' 이라던가 하는 등등의 글

'이단 신앙' 이라던가 '몰몬교 분석' 이라던가 하는 글

'카톨릭 비판' 이라던가 하는 글

이래저래 합치면 1000페이지는 될 듯한 프린트 뭉치.

2000년도에는 이런 걸 봤었구나. 라고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공익하던 중,

2000년에는 냅스터가 있었고,

인터넷 방송에 약간 재미를 들였었고,

본격적으로 시디 구워 남겨두고 한 것은 기억났었는데,

무언가 하나 빠진 느낌이었는데, 종교 관계로 글을 읽었던 것이 나머지 하나였던 모양이다.

정확하게는 종교 중에서도 기독교 하나.

기독교쪽이 아니었던 나로서는,

당시 성경 한 권 읽기도 벅찬 일이었고

- (책은 있었다. 옛날 아는 선배에게 성경이 없어요. 하니 당장 손에 든 것 한 권 주던걸.) -

더해서 성경에서 갈라져 나아가는 그 모든 것들은 더더욱 힘겨운 일이었다.

체계적으로 배워 나간 것도 아니었기에.

그렇지만 기독교 쪽, 신앙 체계라기보다는 곁가지에 불과한 종파 관계만 해도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천주교와 개신교간의 거대한 논쟁에서부터

자그마한 싸움까지,

지금은 잊어버렸다.

그렇기에 2000년도에 무엇을 했는지 기억 못하는지도 모른다.

프린트물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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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 동굴 이야기 | 이유있는 게시판 2004/06/11 18:38

동굴 - 다수

해 - 하나

일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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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MR 전, 후 | 이유있는 게시판 2004/06/11 01:23

OMR용지로 시험 답안을 작성하기 시작한 것은 이제 나의 기억에는 미치지 않는 시절이 되었다.

한 선생, 컴퓨터실에서 휭휭~ 순식간에 읽어들이고 뱉어내는 OMR판독기, 컴퓨터, 대형 프린터가 놓인 가운데, 무언가 말하던 장면이 생각나고, 프린터에 찍힌 전산용지가 교실 벽에 걸려 있는 모습, 그것을 아이들이 가서 보던 모습이 생각난다.

아마도 그것은 고등학교 때였으리라.

확실히 중학교 2학년 때까지는, 시험 답안지로 OMR을 쓴 일은 없었다. 지금은 찾아보기도 힘든, 신문용지 - 아니 신문용지보다도 못할지도 모른다. - 를 잘라서 만든 답안지. 그것은 A5 사이즈라고 해야 할까.. 그보다는 좁았었다. 위쪽에는 커다란 공간이 있어 나중에 구멍을 뚫어 철을 할 수 있도록 해 놓았고, 그 아래로는 학년, 반, 번호, 그리고 이름을, 다시 아래에는 세로로는 1번부터.. 20번까지였던가. 문항에 해당하는 줄이 쳐 있었고, 각 줄은 다시 1번부터 4번까지, 칸이 나뉘어 있었다. 전체적으로는 40번까지. 아마 그랬을 것이고, 그렇게 했으리라 생각된다.

시험을 마치고 답안지를 번호 순대로 거두고 나면, 감독 선생은 답지를 챙겨서 교무실로 가져 간다. 그리고는 해당 과목의 담당 선생 자리에 답지를 올려 둔다. 1반부터 10반까지, 쌓인 답지는 사무용 책꽃이 한 켠은 살짝 채울 정도로 부풀어 올라 있고, 그는 시간이 나면 바로 그 자리에서, 시간이 나지 않으면 일단은 책상 서랍에 넣어 잠그어 두었다가 쉬는 때 다시 꺼내어 하나씩 철을 한다. 미리 준비해 둔 "2 학년 ( ) 반 중간고사 답안지" 라는 식으로 제목과 중학교 이름이 적혀 있는, 약간 두터운 종이로 겉표지를 한다.

어쩌면 두터운 종이는 학교에서 따로 제공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두터운 종이로 만든 답지를 본 적이 있다. 그것은, 각 문항마다 정답 되는 곳만 칼로 네모나게 구멍이 뚫려 있었다. 소위 채점용 정답지인 것이다. 답지 위에 올려 둔 상태로, 체크표가 되어 있으면 그냥 두고, 체크표가 보이지 않는다면 빨간 색으로 체크한다. 1번부터 마지막 문항까지 매기고 나면, 이녀석이 혹시 2중으로 체크한 것은 아닌가 하면서 정답지 없는 상태에서 전체적으로 한번 더 본다. 그리고 틀린 갯수 곱하기 문항당 점수를 빼던지, 혹은 반대로 맞은 갯수 찾아서 문항당 점수를 곱하던지 해서, 위쪽 여백에 커다랗게 붉은 펜으로 적어 둔다.

반에는 학생이 50명은 족히 넘었다. 그리고 한 선생이 맡는 시간 수는 상당히 많았다. 어지간한 경우 아니면 한 학년어치, 즉 500장 이상의 답안을 매 분기마다 매겨야 했다. 날은 하루하루 빨리 지나갈 것이고, 모든 작업이 수기로 이루어지던 시절, 선생들은 바빴을 것이다. 정답지 올려 놓으면서 하나하나 맞추어 가는 일을 혼자서 500번 이상 하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지금은 퇴임한지 오래인, 그러니 그 당시에도 나이 지긋한 이들은 답지를 가방에 넣고, 집에 가져가서 매기곤 했으리라. 그러나, 당시 지은 지 3~4년밖에 되지 않은 어린 학교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반 담임을 맡은 젊은 선생들은 여간하면 아이들을 시켜 답을 매기게 했다. 공부 잘하는 반 아이 몇 명씩 불러서, 자기 책상 옆에 의자 몇 개 가져다 놓고서는, 답안 철을 나누어 주는 것이었다. 반장, 부반장, 서기, 총무, 그리고 안경 낀 한명 더. 이 정도가 보통이었다. 차근차근 보면서, 다른 반 애들 것이기 때문일까, 더더욱 날카롭게 확인하면서, 몇몇가지는 자기들끼리 이야기하다가 선생에게 물어본다. 연필로 우선 체크한 후, 나중에 지웠으나 흔적이 남은 것들, 체크 표시가 다른 칸까지 넘어가 있는 것들에 대해 맞는 것인지 틀린 것인지 하면서 말이다.

나는 당시 지면서 하늘을 발갛게, 자신은 노랗게 익어 가던 해가 교무실 창에, 벽에, 책상에 선명하게 보이던 것을 기억한다.

시험치고 난 뒤 일주일은 매질 소리가 보통이었다. 생각하자고 마음먹기만 하면 지금도 그 얼굴과, 이름과, 전반적인 모습이 떠오를 수 있는 선생이 있다. 시험치고 난 뒤의 첫 수업, 우선은 시험지를 가지고 오지 않은 아이들이 머리를 쥐어박혔다. 문제는 일일이 풀어 간다. 그리고 그가 약간은 쉽다고 생각한 문제가 나온다. 이런 쉬운 것도 틀리다니 하면서 틀린 녀석들은 일어나라고 한다. 그리고는 우수수 머리를 쥐어박는다. 다음 문제를 틀린 아이들은 조마조마해한다. 그 문제가 넘어가면, 소리를 죽여 한숨을 쉰다. 그가 전체적으로 성적 떨어지는 아이들을 따로 '엉덩이찜질'을 하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OMR이 들어오면서, 컴퓨터용 사인펜이 필수품이 되었다. 나는 이와 관련해서, 당시 zerone으로 불린 컴퓨터부장 출신의 한 학년 선배였던 이과반의 한 회장의 발언을 생각한다. '연필로 해도 사실 체크는 된다.' 그러나 나는 고등학교 내내 이것을 확인해 보지 못했다. 어쨌든, '연필로 체크하면 안된다.' 가 학교에서 말한 내용이었고, 지울 수 없는 사인펜은 시험시간에 항상 OMR용지 부족사태를 일으켰다. 모의고사 때와는 달리 자그마한 화이트 스티커도 없으며 - 학교에서는 화이트 스티커를 좋아하지 않았다. 실전에서 쓸 수가 없다면서 있어도 없는 것처럼 했다. 아이들은 미리 예전 모의고사때 남은 스티커를 모아서 서로들 나누어 썼다. - 화이트는 사용 금지였다. 조그만 크기. 아마 지금의 로또용지만한, 미색의, 그리고 우유팩용의 최고급 펄프로 만들었다고 누누이 들었던 두터운 OMR답지. 한쪽 귀퉁이는 비스듬히 잘라져 있는, 처음에는 뒷면이 온통 주관식 답지였다가 나중에는 앞면에 주관식 답지 자리를 만들었던, 고등학교때의 OMR답지를 나는 기억한다.

고등학교 때 배점표는 100점 만점짜리는 객관식 24문항에 주관식 7문항이거나 객관식 25문항에 주관식 5문항, 이 둘 중의 하나였다. 24문항에 3점과 7문항에 4점이면 각각 72점과 28점이니 100점이 되고, 25문항에 3점과 5문항에 5점이면 이 역시 합하면 100점이 된다. 영어는 듣기 20점이 따로 빠지니 이와는 달랐다. - 아마 객관식 3점 20문항에 주관식 4점 5문항이었으리라. - 미술, 음악, 체육, 교련은 실기점수가 빠지니 역시 달랐다. 철학은 내신에는 반영되지 않았다. 성적표에 나왔는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OMR이 도입된 후에는, 어떨 때는 시험친 지 한 시간만에 결과 프린트가 벽에 붙곤 했다. 가로로는 문항번호, 세로로는 번호, 안에는 주욱 맞고 틀리고를 나타내는 동그라미와 가위표. 그리고 오른편에는 학생에게 제일 중요하달 수 있는 점수, 맨 아래에는 담임에게 제일 중요하달 수 있는 반 평균과 학년 평균, 반 순위가 나와 있는 출력물이었다. 담임을 맡고 있던 다른 반 선생은, 수업 중에 한 번씩 - 호기심으로라도 한 번쯤은 볼 것이다. - 보고서는, 혹은 말 없이 수업을 계속하고, 혹은 한 마디 하곤 했다.

나는 나의 담임 선생이 결과 프린트를 보면서 '흐.' 하면서 싱긋 웃던 모습을 기억한다. 그리고 옆 반 선생이 '이 반은 맨날 떠들면서 어떻게 성적은 좋냐.' 하고 반 투덜조로 이야기하던 것도 기억한다.

잠시 한 모습을 생각해 본다. 교복을 입은.. 그러니까 고등학교 시절이리라.. 한 학생이 숨 가쁘게, 한 손에는 우리 반에 붙일 프린트를, 다른 손에는 다른 반에 줄 프린트를 들고 들어 와서는 한순간에 그 프린트를 벽에 올리고 재빨리 압정을 하나 박은 후, 다시 옆반으로 뛰어가던 모습을 떠올린다. '야야야! 수학이다 수학!' 이라는 말소리를 더하여 떠올린다.

La Perruche 를 하나 깨물어 먹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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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7일은 빗방울과 함께 | 이유있는 게시판 2004/06/07 16:23


어저께는 자전거를 타고 잠시 나섰다.

10시쯤 뚜우~ 하는 소리에 뭐지? 민방위인가? 정도로 한심한 생각을 했고

12시쯤 문득 아차 오늘 현충일이지 라고 깨닫게 되었다.

13시쯤 자전거로 툭하니 나섰다가 더운 날 페달밟는 것이 왠지 즐거워서

동네 한바퀴에 내부 지그재그까지 하고는

돌아오는 길에 빈손은 이상하지 싶어 포카칩을 하나 샀고,

16시쯤 자료 찾다가 도서관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자전거 타고 다시 달려갔다.

주말과 일요일에는 17시에 문을 닫기에 약간 빨리 달려간 것이었다.

오늘은 휴관이라는 표시에 다시 아차 오늘 현충일이지 라고 깨닫게 되었다.

그리하여 오늘 비오는 날 다시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야 한다.

그런데 월요일은 격주로 중앙도서관이 문을 닫는다.

사이트로 찾아가서 확인하려니 귀찮다.

이러한 것은 중요한 정보이지만 홈페이지 맨 처음엔 안 나온다.

거기다가 비가 오니 자전거도 쓸 수 없다.

똑 똑 가끔씩 떨어지던 오전에 갈 것을.

삼덕동 학교 담을 따라 자란 장미꽃은 어느 샌가 시들었다.

장미는 5월을 아는 신기한 꽃인 것이다.

시들은 꽃잎 위로 빗물이 널찍하니 퍼져 흐른다.

파리 한두어 마리 돌아다니고,

24도 정도로 식어내리고 54% 정도로 녹아 있는 공기는 조금은 축축한 소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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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 | 이유있는 게시판 2004/06/05 17:59

http://blog.naver.com/tritty/40003067097

5월 기억에,

일요일엔 반드시 비가 왔다.

오늘은 토요일.

날이 더울 거라고 한다.

더위....

더위라면 떠오르는 말이 있다.

'대구 오늘 온도 39도

- 대구사람 : 이번 여름은 시원하군.'

'서울 오늘 온도 30도

- 서울사람 : 으아 미치겠다.'

본지 오래 되었으니 정확함은 떨어지지만 내용은 완벽히 반영해 놓았다.

이 한마디로서 하이텔 '강승빈'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관련해서 이야기할 것이 있으니,

예전에도 말했지만, 그것을 다시 보여 주자면,

대구의 기상관측소는 저저기~~ 파티마 병원 근처에 있는데,

도심에서 약간 떨어져 살짝 동산으로 올라가는 길,

유난히 나무가 없던 시절에도 온통 숲으로 둘러싸여,

나홀로 석빙고를 이루고 있는 그런 자리에 위치한다.

그러한지라.. 그곳은 대구 어느 곳보다도 쾌적하며,

최고 온도도 여간해서는 잘 안 올라간다.

예전 대구 온도 38.8도 이럴 때, 분명 저 별천지 외 대구 본토는 40도 넘어섰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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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첫 에어콘 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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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과 답변 | 이유있는 게시판 2004/06/03 23:43

익숙하다란 말과 사랑하다는 말은 과연 무엇이 다른가란 말에

한 인물은 '사람은 그 길에 익숙해질 수는 있지만 길이 사람에게 익숙해질 수는 없다.' 라고 했었다.

'아냐 익숙해져.' 라고 하기 전에,

'익숙하다는 형용사이고 사랑하다는 동사다.' 라는 말이 먼저 떠올랐다.

믿다란 말도 동사다.

문제점은,

질문이

익숙하다란 말과 사랑한다란 말은 과연 무엇이 다른가,

믿는다란 말은 또 무엇인가.

라는 데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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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목걸이 이야기. 1. | 이유있는 게시판 2004/06/03 12:50

중학교 1학년 때는,

오락실에서의 WWF Superstars 에서 랜디 새비지가 쓰는 클로스라인의 이름이 개목걸이였다.

- 당시 애들은 영화 스파이더맨에도 나왔던 이 레슬러를 '쇠바지'라 불렀다. -

버튼두개 동시로 대시 후 + 손버튼 하나 누르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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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개목걸이' 라는 이름으로 영화가 하나 수입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수감자들 목에 '배틀로얄과 거의 비슷한 수준의' 목찌가 채워지는 그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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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엔 언제부터인가 지하철에 공익군이 있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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