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운지의 작품세계는 일단 그만의 독특함이 있어서 좋다.~~ 라고 하
기엔 나 자신 그의 작품을 태어나서 단 한번, 그리고 또 한번 보았
던 탓에 약간의 무리는 있다. 그러나 적어도 그에게는 손으로 팔이
아닌 팔에 난 털을 쓰다듬는 듯한 '아주 미세하지만 엄청 자극적인'
그런 재주는 있다.
작품의 러닝 타임은 142분으로, 헐리우드의 히트라던지.. 등등의 블
록 버스터와 맞먹는 길이이다. '라이언~~' 이나 '타이타닉' 보다는
짧고 '콘에어' 보다는 긴 편이다. 한쪽에서 보자면 괜스레 라이언 일
병이 노년까지 잘살았다는, 혹은 로즈가 남자말대로 인생따라 잘 나
아갔다는 영 바퀴벌레 알낳은 듯한 석연찮음을 제거한 거라고 볼 수
있고, 다른 면에서는 감독이라던가.. 자신만의 세계가 20분 더 펼쳐
진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작품은 애들이 정신 차리고 보게끔 여러 가지 일이 얽혀 있다. '아게
하' 라고 불려지는 한 아이와 '그리코'와의 만남, 유민왕 '료양키'
와 그의 위조지폐 코드가 숨겨진 '마이웨이' 테이프. 뿌리는 이정도
라고 보여지는데 그것이 뻗어나가 가지를 많이 치고 그중의 몇몇이
서로 얽혔다. 얽힌 줄기따라 감독은 거기다가 기름을 치고 불을 붙
혀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이제 방은희 식으로 가자.
왜!
왜 옌타운인가.
옌타운에 대한 소개는 아게하의 목소리로 두번 나온다. 처음과 끝, 같은
필름을 반복하고 있지만, 그것을 대하는 관객의 마음은 다르다. 처음,
관객이 그를 대할 때는 다만 옌타운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관광 가이드의
안내와도 다를 바가 없다. 우리는 질문할 수도 없고, 나름대로 알아볼
수도 없다. 호기심을 가질 새도 없이, 슈운지는 옌타운 안에서 일어나는,
그리고 인간사에서 가장 충격적인, '죽음' 으로 우리를 이끌고 간다.
그리고 나름대로의 사건이 다시 '폐이홍' - 바로 이야기의 한 축을 요령
껏 이끌어 간 - 의 죽음으로 마무리되었을 때, 슈운지는 녹음기를 돌리
듯, 옌타운에 대해 말해주고 우리의 자그마한 환상을 깨뜨려 준다. '잘
살꺼야.' 라던지 심지어는 '얼마 안 있어 죽겠군' 이라던가..
옌타운은 일본의 엔 / 표기는 엔인데 미국식 발음은 옌 인가보다 / 을
찾아온 이민인들이 일본을 부르는 말, 그리고 그것을 싫어한 일본인들
이 역으로 이민인들을 부르는 말이라 소개된다. 중국어와 일본어, 그
리고 영어가 통용되는 그들만의 세계, 그러나 그것은 일본내의 일이고,
분명, 일본 세계 속의 한 부분이다. 그리고 일본인들은 그것을 잘 알지
못할 것이다. (우리도 '원타운' 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른다.)
옌타운 클럽이 문을 열었을 때 찾아온 한 남자. '아이 칸토 스페코 엥
구리시' 로 발음이 되어버렸다는 분명 외국인 페이스의 그 남자의 말
은 새롭게 선천적인 '이방인' 이 되어버린 그들을 표현하고 있다. 그
들은 정말 'Third Generation Kids' 들인가. 이것은 얼렁뚱땅 다른 이
야기 속에 잠겨버리고 만다. 이름이 붙는 순간, 그것은 새로운 의미를
가지고 존재하게 된다. 슈운지는 굳이 우리에게 '이런 것이 있다.' 이
상을 주지는 않으려 한 모양이다.
왜 나비인가.
그리코의 가슴에는 나비가 그려져 있다. 처음 아게하를 만났을 때, 물
론, 그녀는 그 당시는 이름이 없었지만, 애벌레를 가슴에 그려 주고
아게하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나비는 꽤나 많은 속의미를 품고 있
다. 자유로부터 시작해서 성적인 방종에 이르기까지. 그러나 나같으면
그런 의미에는 신경쓰지 않고 그냥 찍었을 것이다. 솔직이 말하면, 자
유로부터 시작해서 성적인 방종까지란 말은 영 시원찮은 표현이다.. --;)
그리고 아게하는 마약 오염을 치료해 준 의사를 찾아가 나비의 문신을
새겨 달라고 하고 거기서 의사의 (있을 수 있는) 유도로 자신의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얼마간의 화상 후, 그것은 어린 그녀의 두 손에 떨어지
는 나비의 한쪽 날개로 마무리된다. 이것은 복선일까.
잠시 휴식
(대구로 내려와서는 단말기라 무쟈게 슬퍼진다.)
(넘버 쓰리를 보고 나서는 방은희와 방은진이 욜라 헷갈린다.
새가 그럴 때마다 '산부인과에 나온 애는 바로 왜~ 를 하는
누구고 넘버 쓰리에 나온 애가 누구누구야' 라고 해 주는데,
지금도 누구와 누구누구 자리에 방은희와 방은진이 어떻게
들어가는지 모른다. 그리고.. 대구엔 출발 비디오 여행이 나
오는 시각에 볼링 한 게임 보여준다. --;)
당신은 영화 '양들의 침묵'을 기억할 것이다. 그 안에서 범인은 번
데기를 피해자의 입 안에 집어넣어 유기한다. 그것은 그의 탈피의
욕망, 성적인 변화에의 욕구를 나타내는 것으로 풀이된다. 즉 에벌
레인 상태, 그리고 성충인 상태가 있다면 그 사이는 번데기인 상태
이며 이는 주인공이나 다른 누군가의 통과 제의를 뜻하는 것이다.
스왈로우 테일에서도 이런 방식이 구현되고 있다. 아게하의 에벌레
문신 (그게 문신이면 크레신용 짱의 코끼리 문신은 어쩌고 하지 말
길 --;) 은 나비의 문신으로 정식으로 탈바꿈한다. 그리고 그 와중
에 들어가는 것이 페이홍 무리의 출세(?) 와 그리코의 데뷰, 페이홍
의 구금, 그리고 도시락에서 유추할 수 있는 아게하의 마음 변화이
다. 그럼 그녀의 번데기화 및 번데기에서의 탈피는 주로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함이 타당할까? 여러 가지의 묶음, 아니면 아무
래도 사랑?
과학적으로 살짝 들어가 보자. 에벌레-번데기-성충 으로의 단계에
필요한 것은 에벌레 시기에 나오는 두 가지 호르몬의 분비 조절이
다. 번데기의 형성은 에벌레 시기에 꾸준히 나오는 한 호르몬의
분비가 억제되고 다른 호르몬의 분비가 많아짐으로서 이루어진다.
즉 번데기의 형성은 이제까지와는 다른 무언가에 의한 - 즉 이전
과의 단절에서 나오게 된다. 돌아가서, 아게하에게 있어 그동안의
같은 것과, 그 이후의 달라짐을 찾는 것이 그녀의 변화에 대한 추
적을 용이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는데...
그것은 어쩌면 마약굴을 통과하는 아게하의 기나긴 걸음으로 형상
화되는지도 모른다. 그녀의 한쪽 벽은 옌타운이 자리잡는다. 다른
한쪽 벽은 또다른 옌타운, 바로 고도 일본의 화려함이 있다. 그녀
들은 그들이 열망하던 옌타운으로 건너가 머물고 있다. 그리고 그
곳에서 회귀하는 이는 없다. 옌타운의 마돈나이자 나비이던 그리코
는 훌쩍 새로운 옌타운에서 자리잡았고, 나머지 하나 폐이홍은 비
록 과거의 이미지를 유지하긴 했지만 그녀에게 두 벽의 연결을 해
주기엔 무리인 상태가 되어 버렸다. 남은 일은 은유적으로 그녀가
나비가 되어 두 벽을 넘나드는 수밖에. 그녀는 과거의 옌타운의 무
서움 - 유혹과 죽음 을 무릅쓰고 나비가 되어 간다. (나중에 그리코
도 다시 돌아오긴 하지만..) 그러나 그것이 다는 아니다.
왜 마이 웨이인가.
이야기를 이끌어 나감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노래이다. 여기
에는 무척 많은 음악이 흐르고, 노래가 넘쳐난다. 그리코의 열정적
인 무대 공연과 함께 들리던 음악만으로도 흥겨운 가운데, 한 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왜 마이 웨이인가.
이것은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다. '다른 노래도 많은데 왜 그런가,
마이 웨이 말고는 다른 노래가 소화할 수 없기 때문인가.' 왜냐하면
이 마이 웨이는 이 영화에서 느낄 만한 자유로움과 관조의 이미지를
경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나의 길을 가자네' 식의 말은 결
국 옌타운들이여 돌아오라란 준엄한 꾸짖음과도 같지 않은가? 스왈
로우 테일에서 그러나 아게하와 그리코가 페이홍의 시신을 태우는 불
길에 돈뭉치를 던지는 모습은 옌타운으로 돌아온다는 모습이라기보다
는 옌타운인들도 아닌, 옌타운도 아닌 새로운 모습의 삶을 정립한 것
에 불과하다. 이들에게 마이 웨이는 있었다기보다는 끊임없이 생겨서
겨우 단단해진 길일 뿐이다.
슈운지는 특별히 정형화된 인생의 길을 오직 주변 인물들에게만 보여
줄 따름이다. 눈물을 숨긴 냉혈의 유민왕 료양키라던지, 그의 부하들
그리고 그 터프한 외자 인물 (정말 반이던가 단이던가), 사람의 삶엔
무심한 듯한 여자 스나이퍼, 그외 여러 사람들. 감독은 그러나 그들의
그러한 면을 무리해서 강조하지는 않는다. 오직 그들은 감독이 보여주
는 장면에서 다만 정적인 면만 노출되었을 따름이며, 그들에게도 얼마
든지 변화 가능한 여지는 있기 때문이다. 아게하들만이 슈운지의 눈길
이 길게 비추어진 대상이며, 그들은 효과적으로, 그리고 극히 자연스
럽게 그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마이 웨이는, 결국 그들이 이루어낸
그렇게 이쁘지는 않은 삶의 궤적이며, 앞으로의 나아감에 영향을 줄
지는 모르지만, 다만 그 길이 앞으로도 있게 될 거라는 믿음의 반영
인 것이다.
마치며.
때로 4호선 동작대교에서 물새가 하늘 높이 올랐다가 아래로 한없이
떨어지고, 다시금 위로 올라가는 모습을 본 적이 있을지 모른다. 단
순한 배경에서는 아무 뜻없는 듯한 풍경이, 얼마간의 배경의 조화에
맞추어 감성을 최고조로 자극하는 일이 일어난다. 스왈로우 테일은
'보여주기' 식에 적절한 양념을 넣어 만든 아름다운 요리로서 여러분
께 내놓아졌다고 보면 될 것이다. 남은 것은 시식해 보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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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이98년도의 글을 찾아내리라고는 기대를 못했는데,
예전에 가던 사이트가 아직 있었고,
거기에 옛날 나우누리글이 옮겨져 있었음도 알게 되었다.
좀 -_-; 스러운데, 일단은 쓸모가 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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