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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터와 놀이터

가리는 시간으로 (2003/01/04)


세르반테스의 가장 아름다운 문장은, 그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쓴 헌사라고 한다.

"어제 사람들이 제게 종유를 부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저는 당신에게 편지를 씁니다. 시간은 짧고 고통은 더해 가며, 희망은 줄어들 뿐입니다. 그래도 저는 살아 있습니다..."

그리 잘 보지도 않았던 '세계문학대전집' 전50권짜리 양장본 중 제3권, 돈키호테 속의 해설에 나와 있는 것이다.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예전엔 이렇게 대전집 식의 책이 많이 나오곤 했었다.

개인적으로 그리 큰 부담이 되지 않는 글은 상당히 많이 썼었다. 이들의 대부분이 기나기면서 짜임새가 있는 큰 글에 비해서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들 중 아름다운 문장을 꼽으라면, 다음을 찾을 것 같다.

- 피씨통신 이야기는 왠지 머릿속 혼잣말 같아서,
늙어서 애들에게 이야기해줄 거리로도 마땅치 않은 것 같다.
그냥 사라지기엔 좀 불쌍하고 아쉽고 손해 같은데.

2000년 8월 27일자, 나우누리의 고려대학교 통신 동호회 중 95학번 모임 게시판에 쓴 것이다.

과거에 여러 활동을 하며 이름이 높았던 어느 한 사람에 대한 추억에서 시작한 글이었었다.
당시...96년도에서부터 98년도까지, 인터넷이 퍼지긴 했지만 고속 통신은 정착되기 전의 시절, 피씨 통신은 무한한 세계였었다. 생각해 보면 정말 짧은 3년이었는데, 그 동안 이 피씨 통신이 쇠퇴하리라고는, 행여 다른 매체가 나타나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 뭐 이것이 나의 한계이겠지만 - 무한히 늘어만 가는 게시물 세상은 영원히 존재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고, 그 세계 또한 가없으리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당시 글을 쓰기 겨우 2년 전이었었다.

생각해 보면, 정말 많은 다툼과 싸움과 토론과 격론이 벌어졌었다. 내가 관여한 것도 몇 가지 있었겠지만, 나는 거의 방관자로 보는 것이 정확하고, 실제로는 수많은 이들이 자신의 생각과 그 당시에는 존재하였던 '이념'을 위해 열정적으로 밤을 지새우고 가슴을 떨면서 다른 사람의 반박을 읽곤 했었다. 해가 기울 적부터 시작하여 날이 샐 때까지, 그 뜨거운 마음의 열류가 전화선을 통해, 어떨 때는 게시물로서, 어떨 때는 채팅으로서 통신망을 휘감았었다. 이유? 그런 것은 알 수 없었다. 다만 지금 보자면, 오직 펼칠 곳이 있었기에 펼친 것이고, 그것이 하나 둘에 불과했기에 그곳에서 부대꼈던 것이었다.

지금은 그 모두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그 모든 것이 사라졌다. 옮겨 갔다. 보다 빨라진 통신 속도는 웹에서의 동아리 모음을 크게 만들었고, 서로 부딫치며 소리치던 사람들의 마음들은, 저마다의 미디어로 떨어져 나가 그들만의 성문을 세워 놓고 그안에서만 움직이게 되었다. 보다 편리함과 합리적이기를 추구한 나름대로의 발전은 의외의 단점을 드러내면서 효율성을 떨어뜨리게 되었다. 그리고, 통신망은 망했으며, 저축이라도 한 듯했던 게시물은 빼낼 수 없는 자본금이 되어 버렸다. 그제서야 나는 깨달았다. 사람이 없는 한, 어떠한 다툼도 의미가 없다는 것을 말이다.

그 때, 나의 게시물 속에서 언급된 그 모든 다툼, 분쟁들... 그 어떤 의미도 이제는 찾을 수 없게 되었다. 피씨 통신이라는 그 전체 매체가 의미를 가진 때에서야 나름의 가치, 나름의 존재 이유를 가지던 그 사건들은, 짜부라든 풍선 속의 물건처럼, 흘러가는 본질 속에 덮이고 마는 것이었다. .. 그러면서도, 그 글은 살아있다면 살아 있는 것이다.

2003년 1월 3일 새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