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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VER CAFE COFFEEMARU

디카페인 커피에 관한 이야기. [2006.01.04 00:35]

- 요즘 잠도 잘 안 오고 해서 글 조금 올려 봅니다. -

- 검색하니 디카페인 글이 적더군요. 이왕 쓸 거 도움될 거 쓰자 싶어 디카페인 편을 올립니다. -

ㄱ. 디카페인 커피의 의의

커피는 인간의 기호를 충족시키기 위한 상품입니다. 인간의 기호는 개인의 심리와 육체적 상태에 대응하는 것으로, 개인, 시기, 장소와 같은 조건에 따라 항상 다를 수 있습니다. 특히 커피와 같은 음료는 오감에 작용하여 인간의 기호에 직접 호소하기 때문에 기호 충족에 대한 평가 또한 즉시적이고 직접적입니다. 이러한 커피가 고도의 상품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그 충족도는 가능한 한 높아야 하며 충족 범위 또한 넓어야 합니다. 전자가 고품질의 커피에 대한 필요성을 말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기호 충족 범위가 되도록 넓어야 한다는 점을 역설한다 할 수 있습니다. 디카페인 커피는 후자의 요건을 만족시키는 커피 상품입니다.

디카페인 커피는 커피에 함유되어 있는 알칼로이드인 카페인을 '거의' 제거한 커피입니다. 카페인은 커피가 인류에게 알려진 이후로 사람의 생리에 자극을 주고 심적 활동에 영향을 주는 주요한 물질로서 알려져 왔습니다. 다방면에 걸쳐 많은 연구가 진행되어 온 결과, 커피 내의 다른 물질과 더불어 카페인이 존재와 영향에 대해서는 상당한 결과물이 도출되어 있습니다만, 아직도 수많은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 이러한 현 상황에서, 기존에 알려진 내용 중 건강에 대한 문제, 예를 들어 카페인은 치사량이 알려져 있는 물질이라는 점과 이로서 비롯할 수 있는 인간에 대한 유해가능성의 제기, 그리고 지금까지 확실히 밝혀지지 않아 불확실한 내용에 대한 본질적인 두려움과 같은 사항들은 인간의 기호에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디카페인 커피는 이러한 수정된 기호, 본질적으로 기존의 커피 상품이 해결할 수 없는 기호를 충족시키기 위한 커피 상품의 한 확장된 종류로서 기능합니다.

ㄴ. 디카페인 커피 제법

디카페인 커피를 만든다는 것은 커피에서 카페인을 선택적으로 제거한다는 것과 같은 뜻입니다. 카페인은 커피의 3단계 상태중 앞선 2단계, 즉 green bean, roasted bean 상태에서는 세포 내에, coffee drink 의 상태에서는 액체 속의 혼합 물질로서 존재합니다. 세포 내에 내재된 고체 상태에서 카페인을 제거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액체 상태이자 가공의 마지막 단계인 coffee drink 상태에서 카페인을 제거하는 것이 손쉽고 또한 효율적입니다. 그러나 coffee drink 는 가공의 최종 단계를 지났으며 제조 후 즉시 고객에게 제공되어야 하는, 즉 만든 후에는 초 단위로 그 상품성이 떨어져 가는 상품입니다. 또한 마실 수 있는 음료 상태의 상품에 물리화학적 가공을 행하는 것은 시각적으로 긍정적이지 않아 기호에 악영향을 줄 것입니다. 이러한 점은 또다른 상품 단계인 roasted bean 에도 비슷하게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디카페인 커피 가공은 green bean 단계에서 일어납니다.

디카페인 제법은 다수가 알려져 있지만, 원리적으로는 비슷합니다. green bean 은 세포들이 치밀하게 짜여진 덩어리이므로 먼저 이들을 느슨하게 풀어주어 용매가 각 세포마다 도달할 수 있도록 가공합니다. 다음, 용매를 사용하여 카페인을 녹여 냅니다. 용매를 빼내고 나면 카페인이 제거되므로 이제 다시 green bean 의 세포들을 뭉쳐 줍니다. 보통 제1단계에서는 물을 사용해 찌거나 오래 담그어 두거나 해서 bean 을 부풀리고, 마지막 단계에서는 건조시켜 물을 빼내는 방법을 공히 사용합니다. 제법이 구분되는 것은 두번째 단계로서, 카페인의 선택 제거 방식에 따라, 용매의 선택에 따라 제법이 나뉘게 됩니다. 이는 크게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 카페인 선택 제거 용매 사용

카페인은 비극성 물질인데 비해 커피에 맛과 향을 제공하는 요소들은 극성 물질입니다. 비극성 물질은 비극성 물질에 잘 녹지만 극성 물질에는 잘 녹지 않습니다. 이러한 점은 극성 물질에서는 반대로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카페인의 선택 제거를 위해서는 비극성의 용매를 사용하면 됩니다. 물은 극성이 약간 있어 비극성인 카페인은 물론 극성인 향 물질까지 끌어 내므로 부적당합니다. 이에 비해 벤젠, 염화메틸(METHYL CHLORIDE = CHLOROMETHANE), 염화메틸렌(DICHLOROMETHANE) 은 비극성이므로 카페인만을 녹여 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독성이 있어green bean 에 잔여물이 남을 경우 인체에 해를 줄 수 있습니다. 건강상의 문제로 카페인을 빼내기 위한 디카페인 커피에 오히려 해를 주는 물질이 남을 수 있다는 가능성(남는다는 점을 말하는 것이아닙니다. 가능성을 말합니다.)이 존재한다는 점이 아이러니한 면입니다. 그래서 용해성 면에서 손해(분자량이 낮을수록 용해도는 높아집니다.)이지만 독성이 적은 초산에틸(ETHYL ACETATE) 와 같은 용매가 쓰이기도 합니다만, 역시 주종은 염화메틸렌입니다. 염화메틸렌의 경우는 비점이 섭씨40.2도로 낮아 건조 과정 중 전부라도 해도 좋을 만큼 증발한다고 합니다.

최근 각광받고 있는 초임계이산화탄소의 경우도 이 방식에 의한 것입니다. 초임계유체란 임계 온도와 임계 압력 이상에 있는 유체로서 액체는 아니지만 액체와 비슷한 밀도를 지니는 기체 상태를 말합니다. 기체와 비슷할 정도로 확산계수는 높고 액체로서의 점성과 표면장력이 낮기 때문에 침투성이 높으며, 초임계 상태는 압력이 높기 때문에 용해도도 높습니다. 한편 이산화탄소는 비극성 물질이므로 카페인의 선택 제거가 용이합니다. 물론 다른 비극성 상태의 임계물질이 많긴 하지만, 이산화탄소의 임계점은 섭씨31.1도, 7,3메가파스칼로서 임계상태를 만들기가 쉽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물론 비교적 쉽다는 뜻입니다. 가정집에서 임계이산화탄소 만들어 디카페인할 가능성은 로또수준일 겁니다.)

디카페인 제법에 있어서 이러한 용매들은 반복 사용됩니다. 그러므로 카페인이 용해된 이들 용액에서 카페인을 제거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방법으로는 온도나 압력을 달리하여 기화시키는 방법, 탄소 필터를 사용하여 카페인을 걸러내는 방법, 물로 씻어내는 방법 등이 사용됩니다.


둘, 포화 용해도 차이 이용

물은 매우 뛰어난 용매이고 또한 친근합니다. 물은 카페인을 녹일 수 있지만 또한 향미 요소도 녹이기 때문에 그대로는 카페인의 선택 제거 용매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다만, 카페인을 제외한 다른 향미 요소를 포화 용해시켰다면, 이 상태에서는 카페인만 별도로 포화될 때까지 물로써 녹여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커피의 여타 물질은 포화 용해시킨 물을 사용하여 카페인을 녹여 내고, 이렇게 카페인이 녹아난 물은 활성탄과 같은 카페인 흡착 물질을 사용하여 걸러내는 방식은 물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안전성 면에서는 뛰어나며 그렇기에 소비자의 선호를 높이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카페인 흡착 처리 속도가 비효율적인데다가 맨 처음에 카페인만을 녹여 내기 위한 수용액을 만들어 내야 하기 때문에 비용상 부담이 큰 단점이 있습니다. 이 방식을 사용한 것으로 유명한 것이 Swiss Water Process 입니다.


ㄷ. 디카페인 커피의 요건과 특성

이렇듯 디카페인 커피는 용해를 통해 선택 제거하다 보니, 아무래도 '완벽하게' 제거해 낼 수는 없습니다. 다만 가능한 한 카페인 함량만을 낮출 따름입니다. 어느 정도 카페인이 없어졌을 때 디카페인이라 하느냐는 각국에서 별도로 정하거나, 혹은 그러한 기준을 준용해 쓰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는 본래 있는 카페인 함량에서 97% 가 제거되는 것을 요구하며, 유럽에서는 잔류 함량이 0.08% 미만일 것을 요구합니다.

디카페인 커피를 주문해서 보면, 처음에는 거의 대부분 화들짝 놀랄 것입니다. 왜냐면 green bean 이라도 색상으로 보면 dark bean 이기 때문입니다. Swiss Water Process 의 경우는 정말 검을 정도인데, 이는 물을 사용하여 bean 을 물리적으로 변화시키는 과정에 기인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때문에 발생하는 본질적인 문제는 로스팅 때 색상 변화로서 bean 의 변화를 알아내기가 어려워졌다는 것입니다. 그 외에도 디카페인 커피는 물리적으로 일반 bean 에 비해 엉성하고 약하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열의 침투가 쉬워 로스팅 시간이 단축되며 반면 crack 이 일어나는 시간은 짧아집니다.

음료 상태에서 디카페인 커피가 일반 커피에 비해 관능적인 면에서 차이나는가의 문제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습니다. Swiss Water Process Antigua 에 대한 단 한번의 블라인드 테스트상으로는 특별한 차가 난다고는 할 수 없었습니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관능상의 차이는 명칭에 대한 심리적인 요건이 많은 지배를 하는 것 같고, 또한 실제 차이가 난다 해도 이는 roasting 이나 drip 과 같은 제법상의 수준 차이에 충분히, 그리고 많이 묻힐 것이라 봅니다.


ㄹ. 디카페인 커피의 현재와 미래, 그리고.

일반 커피에 비해 디카페인 커피의 단가는 green bean 에서는 30~50% 정도 비쌉니다. 디카페인 공정 자체가 부가 가치를 높이는 특수 공정이다 보니, 기본적으로 상품성 있는 고급 bean 만을 원료로 하는데다, 불량률을 낮추기 위해 별도의 selection 과정을 거치기도 합니다. 이러한 점들이 단가 상승 요인이 됩니다. 그러나 가격이 높으면 아무래도 구매에 악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roasted bean 과 음료 단계에서는 가격차이는 5~10% 로 줄어듭니다. (다만 이것은 원가가 부가 가치에 흡수되는 것으로서 가공업체가 손해를 보는 것은 아닙니다. 즉 원가 500원에 2500 원 부가가치 올리는 것과 원가 700 원에 2600 원 부가가치 받는 것의 차이입니다.)

국내에서는 2002년 월드컵 때만 해도 디카페인 커피가 드문 편이었습니다. 현재는 메뉴로서 제공되는 디카페인 커피는 상당히 많습니다. 그러나 2005년 기준으로 보통 green bean 이 75000여 톤이 수입된 데 비해 decaffeined green bean 은 840여 톤이 수입된 점 (1.1%) 으로 보면, 제공되는 종류는 많으나 양은 미약합니다. 기호 측면에서 보자면 고객의 기호는 관심 정도의 수준으로서, '드디어 나왔구나, 이것만 즐겨야지.' 보다는 '이런 것도 있구나, 선택의 폭이 넓어서 좋다.' 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혹자는 '목숨 걸고 카페인을 탐구하는 시기는 지났다.' 라고 말하는데, 실제로 커피의 일상화와 더불어 사회의 전반적인 카페인 감수성이 낮아진 느낌도 듭니다. 물론, 이러한 것이 커피 산업의 청사진을 제공하지는 않습니다. 인간의 기호는 불변하는 것이 아니며, 커피가 인류의 발생과 함께 해 온 것도 아니며, 앞으로의 미래도 단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2년 전 뉴스에 카페인이 원래 없는 커피나무가 브라질에서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유전자 조작이 아닌 실제 자생하는 나무에서 카페인이 없었다는 것이었고, 앞으로의 배양 또한 전통적인 교배법을 통해 이룩해 낸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커피가 기호에 바탕을 둔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GMO 커피는 아예 논외로 삼는 것이 옳을 것이며, 이러한 바탕에서 브라질 학자들의 접근 방법은 극히 타당하다 하겠습니다. 다만, 카페인과 같은 알칼로이드가 해충을 죽이기 위한 나무들의 자체 생존 수단이었다는 설을 놓고 본다면, 카페인이 유전적으로 없는 이들 나무들의 생존 특성은 어떠할지, 커피의 생산성은 어떠할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으로, 커피의 품질은 어떠할지 걱정에 가까운 궁금함이 듭니다. 그러나 어느 경우에도, %라는 단위가 사용될 수 있는 한, 가능성과 함께 희망은 존재합니다.

추가 :

1. 거래시에는 줄임말을 씁니다. Swiss Water Process 는 SWP 로 나타냅니다. European Process , KVW (Kaffe Veredelungs Werk) 라는 것은 염화메틸렌을 사용한 제법을 말합니다. natural process 는 디카페인에서는 초산에틸을 사용한 제법을 말하는 것으로 봅니다.

2. 향미 평가면에서는 디카페인 커피와 보통 커피간의 우열은 물론 디카페인 내에서도 제법상의 우열차를 인정하는 편입니다. (향미에 관한 본문 속 언급은 개인적인 의견임을 다시 알려 드립니다.) 여러 제법 가운데에서는 KVW 제법이 커피 고유 성분을 가장 잘 지켜준다고 합니다.


3. 디카페인 수입에 대한 글은 양재선씨(스타벅스) 의 중앙일보 기고문에서 나온 것 같습니다. 식품공전 제3.3.2.12에 따르면 커피의 추출용제로는 물과 이산화탄소만 허용합니다. 그러므로 물추출 (SWP)도 가능하고 그 외에 초임계이산화탄소추출(예 : 맥심디카페인) 도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