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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더듬어.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작업실의 김실장님은 나름대로 386세대 익창군이라 할 만해서,

음악, 낚시, 사진, 자동차 꾸미기등등취미로 할 만한 것은 다 해 본 이력이 있다.

일반적으로 한 종류의 취미를 애호가수준으로 이루려면 기본이 천만원이고,

한 종류에서 원없이 할 만한 것 다 해보려면 억이 들어간다고 하는데,

3자로 시작하는 나이를 적으면서 자랑스러움을 느꼈다는 비스마르크는 아닐지라도,

욱군의 선배가 말했었던 '20대에는한 번은 티뷰론' 이라는 말처럼,

무언가 해 볼만큼 해 본다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는 의미 있는 일이긴 하다.

다만 최근에는 긴축재정인지라,

새로이 취미를 만들어 내지는 못하고 있고,

다만 '삽살이 동호회' 에서 분양받은 개를 키우고 있으신데,

초창기 회원이었던지라 분양받은 강아지의 혈통은 좋았다.

이름은 아롱이. 건강한 미색 삽살이.

지난해 초였던가 말이었던가, 그 동물학적인 시기는 알 수 없는데,

'장군' 이던가 하는 놈을 통해 강아지 넷을 봤는데,

그 중 한 녀석이 상당히 희귀하다는 순백의 삽살이였다.

혈통이 좋은 까닭에서인지, 홍보가 좋았던 까닭에서였는지,

시베리안 허스키가 어느 집 아이를 물어 죽였다는 소문, 경기 불황이라는 현실, 삽살이 자체의 워낙 큰 사이즈와 같은 좋지 않은 사정에도 불구하고,

셋이 금방 분양되었고, 다만순백의 삽살 녀석만 어미와 함께 자라게 되었다.

녀석의 이름은 아롱-이, 여기서의 이는 2를 말한다.

그래서 실장님이나, 반대편 국악원 아가씨나 찾는 애들이 아롱이를 부를 때는 '아롱아~'

그리고 아롱-이를 부를 때는 '아롱!' 이라고 부르곤 했다.

사물에 대해 친근해지면 나름대로 별도의 이름을 지어주곤 하는 익창군은,

다만 강아지 부류에는 어릴 적부터 친하지 않은 까닭에

아롱이라는 이름도 별로 불러 보지 않았고,

다만 드나들 때 바깥쪽에 혹은 국악원에매여서는 천성적으로누덕도사 얼굴로

뒹굴~ 거리는 모습을 지켜보고,

때로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면 슬쩍 미소만 지어주곤 했었다.

당시 국악원에도 원장이 분양받은 삽살이외 두 마리의 개가 있었는데, 역시 내가 붙인 이름은 없었다.

붙여진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다.

근처의 3층 건물 옥상에는 그 건물의 할머니가 키우던 닭이 있었는데,

토종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나름대로 대구의 가운데 지역이라 할 수 있는 삼덕동에 꼬끼오 소리를 잘도 울려 주었다.

맞은편 국악원에서 지켜보면 가끔씩 옥상 벽에 올라타서는 홰를 치기도 했는데,

역시 붙여진 이름은 없었다. 그냥 닭이었다.

지금 같으면 케이스케 정도로 붙여 볼만도 하겠지만,

10월엔가 찾아가 보니 이미 존재하지 않았다.